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셋. 글/지극히 현실적인 퇴사

퇴사라는 산을 넘을 수 있을까

by 여기블 2020. 5.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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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나큰 산을 마주한 느낌이었다.

직장인인 나에게 "당신의 꿈은 무엇입니까?"라고 물어보는 설문지의 질문을 마주한 순간.

가장 처음 든 생각은 '직장인'이란 나에게 '꿈'이라는 단어는 어딘가 모르게 이질적이라는 점이었다.

더 이상 꿈 없이, 희망 없이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나 자신의 모습이 바로 내가 마주한 큰 산이었다.

꿈이 없는 나를 꿈꿔본 적 없었기에 그 산 앞에 서 있는 나는 막막하고 두려웠다.

모든 것을 이루었다고 생각한 순간,

삶에 대한 열정을 잃어버린 아이러니함.

많이 들을 수 있는 30대들의 고민은 인생에 정해진 목표가 없다는 것에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10대에는 공부만 잘하면 되었고, 20대에는 좋은 직장에 취업만 하면 되었다. 하지만 안정적인 수입과 어느 정도 갖추어진 살림살이 그리고 익숙해진 회사 생활이 반복되면 될수록 이유 없이 괴롭고 무기력했다. 20대의 내가 그렇게도 꿈꾸었던 모습으로 일하고 있던 나의 모습을 발견한 순간 어딘지 모르게 맥이 탁 풀려버리는 느낌이었다. 모든 것을 이루었다고 생각한 순간, 삶에 대한 열정을 잃어버린 아이러니함이란 점점 더 큰 문제로 다가왔다.

10대의 나 - 대학이라는 목표

20대의 나 - 즐거운 대학 생활, 좋은 회사에 취업하기

30대의 나 -......?

방향성과 목적지를 잃어버리고 나자 엔진이 꺼지는 것은 시간문제였기 때문이다. 엔진이 꺼진 삶을 살아가는 것은 두렵고 때론 무섭기까지 했다. 왜냐하면 언제 다시 엔진이 켜질지 알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10대에도, 20대에도 고민이 없었던 적은 없었다. 진로 선택에 대한 고민도 많이 하였고, 내가 잘 할 수 있을지에 대한 확신이 부족한 적도 있었다. 또, 내가 이렇게 일을 못하는 사람이었나 하는 자괴감에 빠져 계단에서 혼자 훌쩍이던 날들도 있었다. 하지만 그 때에는 무엇을 어떻게에 대한 고민이었다면 30대는 왜에 대한 고민이었다.

무엇을 위해 치열해야 하고

무엇을 위해 살아야 하는지를 잃어/잊어 버리다.

대학교 4학년, 정해지지 않은 진로에 대한 불안감으로 마냥 도서관을 지켰던 내가 마주 했던 풍경이 있었다. 도서관 가로등에 매달린 수십 마리의 나방들. 나는 왠지 그 모습이 그때의 나의 모습과 같다고 생각했었다. 전구 속에 무엇이 들어있는지도 모르면서 최선을 다해서 몸을 던지는 그 모습.

이 풍경에 대한 깨달음 때문이었는지, 조금 돌아가긴 했지만 나라는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무엇을 좋아하고 싫어하는지, 어떤 일을 잘하고 즐기는지에 대하여 충분히 고민하고, 실패하고, 답을 찾을 수 있었다. 어렵사리 합격했던 대기업 인턴 정규직 전환에서 탈락했고, 어쩌다 넣은 원서로 생각하지 않았던 중소기업의 마케터가 되었다. 작은 회사에서 고생하며 여러 일을 담당할 수 있는 기회가 생겼고 그렇게 나는 원하던 기업에서 원하는 일을 하는 사람이 될 수 있었다.

내 인생이 여기까지 였다면 아름다운 동화책의 마지막처럼 'Happily ever after'이라는 단어로 끝맺음할 수 있었을 텐데 아직 나는 평균 수명을 놓고 보았을 때 인생의 3분의 1 지점도 채 안된 곳을 지나고 있었다. 그리고 그 시점에서 반복되는 하루하루, 가까이서 보니 비극으로 가득한 삶, 꿈같은 건 사치인듯한 현실 싸우고 있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더 이상 정해진 가이드라인과 인생의 꿈이 저절로 주어지지 않았다는 사실이었다. 나는 무엇을 위해 치열해야 하고 무엇을 위해 살아야 하는지를 잃어 또는 잊어버렸다.

그 시점에서 나는 퇴사했다.

그 시점에서 나는 퇴사했다. 더는 걸어갈 수 있는 힘도 없었을 뿐더러 그 당시에는 더 이상 잘못 간다면 돌이킬 수 없을만큼 무너질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회사 안은 전쟁터, 회사 밖은 지옥', '네 나이가 몇인데?', '다 버티면서 사는거야.'라는 각종 선배들의 조언을 무시하고 퇴사했다.

그리고 그렇게 꿈꾸었던 퇴사는 그리 대단한 것도, 대단하지 않은 것도 아니었다. 그저 내 인생의 한 과정이며 부분이라고 생각했다. 결말을 먼저 밝히고 싶진 않지만, 나는 다시 회사로 들어갈 준비를 하고 있다. 일말의 후회가 없다면 그것은 거짓말이다. 그렇게 후회를 하고 있을 때, 한 분이 조언을 주셨다. '퇴사전의 돌고래님과 퇴사후의 돌고래님은 분명 다른 사람이에요'라는 말은 지금의 현실을 묵묵히 감당하게 해주기에 충분한 말이었다.

 

지금도 산을 넘고 있는지 아니면 그 산 입구를 헤매는지, 도대체 내가 어떤 상태인지조차 알 수 없다. 그나마 할 수 있는 건 무엇이라도 글로 써서 남기는 것이었고, 여러분들이 읽고 있는 이 글이 바로 그 산물이다. 매일 쓰기도 했고, 한동안은 쉬기도 했다. 제목과 서문도 굉장히 여러 차례 바꾸었고, 브런치에 올리기까지 몇 번이나 실패도 했다. (사실, 글을 쓰는 이 순간도 아직 정식 작가 등록조차 마치지 못한 상태이다.)

글을 쓰며 가장 많이 고민한 점은 다음과 같은 2 가지이다.

1) 나를 위한 글 vs 남을 위한 글

나의 마음을 기록하고 나의 일상을 담는 것도 의미가 있었다. 더 많이 솔직해질 수 있었고 신경 쓸 것도 많이 줄어들었으므로. 하지만 남을 위한 글을 쓰고자 한다면 조금 더 매력적인 제목과 문장 흡입력과 현재 트렌드에 부합한 지, 누구를 위한 글을 쓸 것인지 많이 고민해야 했다. 쓰면서도 수차례 바뀌었지만 결국엔 모두와 함께 이런 고민을 나눌 수 있는 글이 되고자 한다. 부족하지만 최선을 다해서.

2) 책의 온도

퇴사에 대한 정보성 글을 써야 할까?라고 생각했지만 그것은 나에게 큰 의미가 되지 않을 것 같았다. 그렇다고 하여 요즘 서점에서 자주 찾아볼 수 있는 퇴사 관련 에세이가 되고 싶지도 않았다. 왜냐면 퇴사 후 1년이 지난 지금의 내가 마주한 것이 그리 따뜻하고 희망적인 상황만은 아니기 때문이다. 결국 화장실에서 한 줄, 지하철에서 한 줄, 술기운에 한 줄 모아가다 보니 냉온탕을 왔다 갔다 하는 그런 온도가 되어 버렸다.

몇 번의 수정을 더해가며 결국 이 책을 어떻게든 마무리 짓고 마는 것이 고민보다 우선순위임을 알게 되었다. 고민만 하지 말고 일단 뭐라도 하는 것이다. 퇴사라는 산 앞에서 우물쭈물하지 말고 발을 들고 한 걸음씩 움직이는 것처럼 말이다.

삶은 유한하고, 지금 이 시기는 변화무쌍한 우리 인생의 순간적 찰나에 지나지 않는다. 이러한 사실을 여과없이 받아들이고 인정하는 것은 분명 쉽지 않다. 그럼에도 이유 없이 눈물이 흐르는 일들을 누군가 겪는다고 하면 나는 마음이 아플 것이고, 위로하고 싶을 것이다.

이 책은 나라는 사람이 가지는 어떠한 덤덤한 종류의 위로이다. 인생의 어느 산자락을 지나고 있는 나와 우리에게 보내는. 또한, 무엇이라도 다시 해보고자 하는 발버둥일 수도 있으며 또 다른 길을 알려주는 하나의 문이 될 수도 있다. 다시 무엇인가 나에게 꿈을 안기고자 하는 시도일 수도 있다. 아니면 나와 같이 고민을 하는 등산로의 동지들을 만날 수 있는 장이 될지도 모르겠다.

그러니, 많은 분들의 응원과 따뜻한 격려, 솔직한 질책 등을 기다리는 마음으로 발자국을 옮겨 퇴사라는 산을 마주해본다. 담담하게, 인생의 한 과정을 겪는게 당연하다는 듯이 태연하게.

오늘의 플레이리스트

Dream - Priscilla Ahn (링크)

https://www.youtube.com/watc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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